💃 회복의 춤
한개만 더 맞으면 수석할 수 있었잖아.
1.우리는 내가 어떤 희생을 하면 또는 내가 어떻게 하면 배우자(엄마, 자녀엄마,자녀, 등,등)나 환경이 어느 순간에 짠하고 바뀔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2. 질문하기
상대를 변화(어떻게 되기) 위해서 나는 어떤 태도를 반복했었나요?
연합고사 성적이 안 좋게 나와서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동두천에 있는 고등학교로 간 후부터 아빠는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뭐든지 항상 1등이어야 하고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하고 늘 사람들의 인정 속에 있어야 하는 성향과 행동이 있었다.
이 성향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예전부터 고민을 했던 거라 그 이유가 아빠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행동임은 알고 있었다.
나는 일본어를 좋아했고 일본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고3 때 모든 과를 다 일본과 일본어쪽으로 지원했는데
부모님의 반응은 좋진 않았다.
너는 컴퓨터를 해야 되는데 왜 일본어를 하냐는 부모님의 반응.
개발자인 아빠는 나의 꿈을 개발자로 설정해놓았다.
JAVA가 대세고, JAVA 개발을 해야 돈을 많이 번다는 아빠의 말.
틀린 말은 아닌데 나는 개발이 너무 싫다.
원하는 일어통번역과에 들어갔는데 친구들과의 관계가 문제였다.
놀고 있던 무리에서 왕따 비스무리하게 당해서 그게 너무 싫어서 학교에 가기 싫었고 자퇴를 하게 됐다.
주변에 둘러대기에는 왕따인 모습이 너무 창피하니까 그냥 중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걸 또 다시 복습하는 거 같고,
비전이 없는 거 같아서 자퇴했다고 했다.
자퇴하고 다시 다른 전공으로 대학을 들어가고 싶었는데 집안 상황이 좋지 않아서 1년 반 쉬고 대학에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전공은 부모가 원하는 IT 분야로.. 개발 전공이였다.
예상 외로 컴퓨터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재밌었는데, 개발 과목은 역시나 싫었다.
대학 1학년 첫 중간고사 때 차석을 했다.
동기들보다 나이가 2살이나 많아서 뒤쳐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한 것도 있었다.
학년 전체에서 2등인데 내 인생에서 2등을 해본 적이 없는데 난 나를 너무 칭찬하고 대견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엄마도 잘했다고 했다.
문제는 아빠였다.
아빠는 나를 칭찬하지 않았다.
한 개만 더 맞으면 수석할 수 있는데 그걸 못하냐고.
너무 속상해서 아빤 왜그러냐고 엄마에게 이야기했더니
너네 아빠가 그렇게 표현해도 주변에 다 자랑하고 다닌다였다.
주변에 자랑하면 뭐하나, 나한테는 표현하지 않고 무시하는 아빠,
이미 상처 받았다.
그리고 너는 대학을 2년이나 늦게 시작해서 사회생활도 2년이 늦은거라고 무시한 아빠와 엄마.
그것도 상처였다.
그 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아빠와 엄마의 인정을 받기 위해 뭐든지 열심히 했다.
특히, 아빠.
"두고 봐라, 내가 수석한다."
수석을 했다. 수석을 했는데................ 큰 칭찬은 없던 기억이 난다.
부모에게 인정 받고자 하는 행동은 22살 때부터 믿게 된 하나님에게도 적용이 되었고,
학교, 교회, 회사 어디든지 나타났다.
맡기면 뭐든지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완벽주의에 빠져서 완벽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웹디자이너를 할거라고 했더니 부모가 나를 무시하고 대판 싸운 기억이 난다.
너는 개발을 해야 되는데 왜 그러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는 부모가 너무 싫었다.
웹디자이너를 조금 하다가 html 코딩을 하는 웹퍼블리셔로 전향했다.
개발에 조금 가까워졌으나 여전히 아빠는 만족하지 않았다.
아빠는 너무 쉬운 개발인데 그걸 왜 못하느냐고 했다.
아빠의 두뇌가 나에게 있었다면 내가 개발이 가능했겠지.
지금은 다른 직업으로 전향해 개발과는 거리가 더 멀어진 일을 하고 있다.
여전히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다만 대기업 계열사에 들어간 것에는 인정을 해주는 것 같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인정받고자 하는 것도 그만하고 편하게 살고 싶다.
내 인생이니까.
2. 질문하기
상대를 변화(어떻게 되기) 위해서 나는 어떤 태도를 반복했었나요?
연합고사 성적이 안 좋게 나와서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동두천에 있는 고등학교로 간 후부터 아빠는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뭐든지 항상 1등이어야 하고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하고 늘 사람들의 인정 속에 있어야 하는 성향과 행동이 있었다.
이 성향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예전부터 고민을 했던 거라 그 이유가 아빠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행동임은 알고 있었다.
나는 일본어를 좋아했고 일본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고3 때 모든 과를 다 일본과 일본어쪽으로 지원했는데
부모님의 반응은 좋진 않았다.
너는 컴퓨터를 해야 되는데 왜 일본어를 하냐는 부모님의 반응.
개발자인 아빠는 나의 꿈을 개발자로 설정해놓았다.
JAVA가 대세고, JAVA 개발을 해야 돈을 많이 번다는 아빠의 말.
틀린 말은 아닌데 나는 개발이 너무 싫다.
원하는 일어통번역과에 들어갔는데 친구들과의 관계가 문제였다.
놀고 있던 무리에서 왕따 비스무리하게 당해서 그게 너무 싫어서 학교에 가기 싫었고 자퇴를 하게 됐다.
주변에 둘러대기에는 왕따인 모습이 너무 창피하니까 그냥 중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걸 또 다시 복습하는 거 같고,
비전이 없는 거 같아서 자퇴했다고 했다.
자퇴하고 다시 다른 전공으로 대학을 들어가고 싶었는데 집안 상황이 좋지 않아서 1년 반 쉬고 대학에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전공은 부모가 원하는 IT 분야로.. 개발 전공이였다.
예상 외로 컴퓨터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재밌었는데, 개발 과목은 역시나 싫었다.
대학 1학년 첫 중간고사 때 차석을 했다.
동기들보다 나이가 2살이나 많아서 뒤쳐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한 것도 있었다.
학년 전체에서 2등인데 내 인생에서 2등을 해본 적이 없는데 난 나를 너무 칭찬하고 대견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엄마도 잘했다고 했다.
문제는 아빠였다.
아빠는 나를 칭찬하지 않았다.
한 개만 더 맞으면 수석할 수 있는데 그걸 못하냐고.
너무 속상해서 아빤 왜그러냐고 엄마에게 이야기했더니
너네 아빠가 그렇게 표현해도 주변에 다 자랑하고 다닌다였다.
주변에 자랑하면 뭐하나, 나한테는 표현하지 않고 무시하는 아빠,
이미 상처 받았다.
그리고 너는 대학을 2년이나 늦게 시작해서 사회생활도 2년이 늦은거라고 무시한 아빠와 엄마.
그것도 상처였다.
그 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아빠와 엄마의 인정을 받기 위해 뭐든지 열심히 했다.
특히, 아빠.
"두고 봐라, 내가 수석한다."
수석을 했다. 수석을 했는데................ 큰 칭찬은 없던 기억이 난다.
부모에게 인정 받고자 하는 행동은 22살 때부터 믿게 된 하나님에게도 적용이 되었고,
학교, 교회, 회사 어디든지 나타났다.
맡기면 뭐든지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완벽주의에 빠져서 완벽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웹디자이너를 할거라고 했더니 부모가 나를 무시하고 대판 싸운 기억이 난다.
너는 개발을 해야 되는데 왜 그러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는 부모가 너무 싫었다.
웹디자이너를 조금 하다가 html 코딩을 하는 웹퍼블리셔로 전향했다.
개발에 조금 가까워졌으나 여전히 아빠는 만족하지 않았다.
아빠는 너무 쉬운 개발인데 그걸 왜 못하느냐고 했다.
아빠의 두뇌가 나에게 있었다면 내가 개발이 가능했겠지.
지금은 다른 직업으로 전향해 개발과는 거리가 더 멀어진 일을 하고 있다.
여전히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다만 대기업 계열사에 들어간 것에는 인정을 해주는 것 같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인정받고자 하는 것도 그만하고 편하게 살고 싶다.
내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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